왜 많은 프로그래머가 여자친구가 없는 것일까?
프로그래머들이 여자친구가 없는 이유는 바로 “에이다의 저주” 때문이다. 여기서 에이다는 우리가 잘 아는 그녀, 바로 최초의 프로그래머인 에이다 러브레이스(1815~1852)1다.
오늘날, 어느 곳에서든(?) 절대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컴퓨터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컴퓨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되어 있고, 이 중 소프트웨어는 사람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은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이것을 만드는 사람을 프로그래머라고 한다.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여자인데 반해 요즘의 프로그래머는 대부분이 남자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프로그래머는 여자친구가 없다.(ㅜ_ㅜ….) 그래서 종종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나는 이것을 에이다의 저주로 부르기로 했다. 그렇다고 에이다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녀의 집안, 정확히는 아버지 Byron에 원인이 있다.
조지 고든 바이런(1788~1824)2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자 유명한 바람둥이였다. 초상화를 보면 알겠지만 훈남스타일의 굉장한 꽃미남이다. 이 정도 꽃미남이 그 시대에 시도 읇었으니 뭇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그곳 남자들에게는 절름발이인 바이런의 걸음걸이마저 유행이 되었을 정도라고 하니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자주 스캔들에 터지곤 했는데, 한번은 사촌 누나와 스캔들이 터진 적도 있다. 보통의 스캔들과는 다르게 가족관계에서 스캔들이 터져 나왔으니 바이런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
이런 스캔들을 한방에 잠재울 방법이 뭘까? 바로 결혼이다. 그래서 바람둥이 바이런도 결혼할 나이도 되었고 스캔들도 잠재울 겸 아나운서 안네 이자벨라 밀 뱅크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바람둥이 버릇을 못 버린 것인지는 몰라도 결혼한 지 1년도 안되어 파경을 맞고 이탈리아로 떠나게 된다. 짧은 결혼 생활이었지만 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 아이가 위에서 말한 에이다이다.
이혼했어도 에이다에게는 아버지지였다. 멀리 있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보고 싶은 마음을 전하지만 바이런은 답장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에이다는 아버지 바이런이 죽을 때까지 얼굴 한번 보지 못한다. 이혼한 어머니 역시 그리 평탄치 않은 인생이었을 테고, 그런 어머니를 옆에서 지켜보는 에이다는 얼마나 한이 서렸겠는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프로그래머의 어머니, 그녀는 아버지이자 바람둥이였던 “남자”를 증오했던 것이다. 이 증오를 가득 담아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녀의 한이 프로그램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과 연관이 있다. 바로 최초의 컴퓨터를 발명한 찰스 배비지(1791~1871)3다. 찰스 베비지는 또라이 취급을 받으며 장애인이 되고 죽는 순간까지 죽도록 불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홍경래의 난으로 모든 백성이 굶어 죽어가던 그때 그는 컴퓨터를 발명한 수학 천재였다.
그리고 프로그래머의 어머니, 에이다 또한 수학 천재였다. 하지만, 그 시대 사회적 배경상 여자가 수학을 잘한다고 해도 어디 써먹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에이다는 또 다른 수학자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공부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또라이 취급 받던 베비지다. 베비지 역시 에이다의 수학적 지식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니, 에이다는 컴퓨터를 발명하는 데 있어서 크게 눈에 띄지 않던 또 다른 발명가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녀는 최초의 컴퓨터에 자신의 한을 심게 된 것이다.
자! 이렇게 만들어진 컴퓨터, 그리고 그 컴퓨터에게 일을 시키는 프로그래머. 여자친구가 안 생기는 이유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게 다~~ 배성호 에이다 때문이다. -_-+
- 이미지출처 wikipedia ↩
- 이미지출처 http://www.csulb.edu/~csnider/brontes.html ↩
- 이미지출처 korea.internet ↩